추 도 사

비통함과 애통에 잠긴 오늘,

우리 서귀포오석학교가족 일동은

가슴 메이는 슬픔을 안고,

고 오공선 교장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서귀포 오석학교와의 인연이 처음 작되었던 1995년

“부족한 점이 많으나 학교와 학생을 위하여 봉사하고 싶다”시며

63세의 나이에 자원교사를 지원하시었습니다.

당시 이·삼십대의 선생님들이 주를 이루었던 자원교사들은

반신반의 하는 눈빛으로 며칠 찾아오다 관두시겠지 생각했지만

끊임없이 봉사에 대한 열정을 피력하시어

한문 담당 교사로 정식 인준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원교사 인준 후 단 한번의 결강없이 수업 시간을 엄수하시어

모든 선생님들의 모범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업내용 또한 철저히 준비를 하여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함으로서

학생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셨습니다.

가장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나이차가 많은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 말씀을 낮추는 법이 없으셨고 모든 사람들을 존중으로 대함으로서 자원교사간의 화합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1998년 교장선생님으로 추대된 이후에는 오석학교 최고의 어른으로서

모든 선생님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얘기를 수렴하기 위해 장난스럽게 차를 부탁 하시곤

학교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였습니다.

매달 열리는 교무회의 자리에선 늘 선생님들을 믿는다며 화합을 중시하셨고 발전되어가는 학교의 모습은 모두 자원교사들 덕이라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비가 세는 천정을 보수하기 위한 작업을 할때면

학생들이 더 이상 비에 젖은 바닥을 닦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하셨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잔디를 깔때면

나이든 학생들이 먼지를 마셔서 걱정이었는데 선생님들 덕분에 학교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

오석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하셨던 8년이란 시간동안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학교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몇 차례의 큰 수술로 부득이 교장선생님의 자리를 내려놓은 후에도

세배를 드리려 가면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밝은 모습으로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가족분들이 손수 준비한 솔잎주와 떡국들을 내놓으셨습니다.

함께 떡국을 먹고 담소를 나눌때에도 자신의 안위보다도 먼저

“누구 선생님은 올해에 안보이네요”며 선생님들의 안부와 “누구 학생은 올해 졸업했지요?”하며 학교소식과 일들을 물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학교소식이 궁금할 때면 몸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학교행사가 있을 때 직접 찾아 오셔서 선생님들과 학생들하고 이야기

나누며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올 설에 찾아갔을 때에는 이야기 보다는

선생님 한명, 한명의 손을 잡으며 한 마디 말보다

더 큰 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전에 선생님이 오석학교 40주년을 맞이하며 쓴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오석인으로서 보낸 10여 년간의 학교생활은 일생을 통해서 가장 보람 있는 행복한 생활이었습니다. 마지막 학교를 떠날 때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스승의 노래와 교가를 부를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탐라봉사상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성원으로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토록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신 오공선 교장선생님

선생님 보여주었던 이 많은 관심과 열정은 저희 가슴속에 깊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아끼시고 사랑하신 오석가족 모두가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 슬프기 한량없고 가슴이 저미는 비통함을

오석가족 모두의 눈물로 모아

먼저 가는 선생님의 영혼 앞에 삼가 명복을 빌며,

이 세상의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부디 마음 편히 영면하소서.

2011. 5. 31.

서귀포 오석학교 가족